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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통구 북쪽에 널려진 세계유산

  • GT 이상기
  • 조회 859
  • 2014.03.05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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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유산 사이트 http://whc.unesco.org'에 게재된 통구유적 시의도
ⓒ 이상기
환도산성(丸都山城)

박물관을 보고 우리 일행은 환도산성으로 향한다. 통구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다리를 건너면 환도산성 남문까지 길이 아주 잘 나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2004년 중국 정부가 길을 새로 냈다고 한다.

환도산성은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환도산에 만든 천연의 요새이다. 산성의 남쪽에 남옹문(南瓮門)이 있고 그 앞으로 동에서 서로 통구가 흐른다. 그러므로 환도산성에 들어가려면 먼저 통구를 건너고 남문을 거쳐야 한다.

남문을 제외하면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환도산성은 유사시 방어성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평시에는 국내성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다가 전쟁 등 비상시에는 왕과 귀족 등 지도부가 환도산성으로 피신하여 통치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해발 676m인 환도산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환도산성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고 계곡 안에 주둔지를 마련한 전형적인 산지형 산성이다. 가장 낮은 남문(해발 207m)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총 7개의 문이 있으며 북쪽 서단에 있는 4호 문이 해발 647m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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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망대에서 바라 본 통구와 국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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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의 옹성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산성 안쪽의 평지와 경사지는 주둔지와 농지로 사용되었다. 궁전터, 병영터, 지휘부 겸 관측소인 점장대(點將臺) 또는 요망대(遼望臺), 음마지(飮馬池) 등을 볼 수 있으며, 우물과 연못, 배수 시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점장대에 올라가면 가까이 통구와 집안시가, 그리고 멀리 압록강과 만포 지역의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환도산성에 대한 발굴은 과거 여러 차례 있었지만 체계적인 발굴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이루어졌다. 남문에서 도랑을 따라 올라가면 먼저 점장대가 나오고 그 뒤에 바로 병영터가 있고, 그 오른쪽에 음마지가 있다. 이들 유적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조금은 평평한 지역에 궁전터가 나타난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장방형이다. 동쪽 벽 91m, 서쪽 벽 96m, 남쪽 벽 70m, 북쪽 벽 75m. 건축은 주로 목재로 이루어졌으며 난방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평시에는 여름 궁전으로, 전시에는 피난 성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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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도산성 지역 입체도
ⓒ 이상기

발굴을 통해 산성이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고구려 건국 전후에 사용된 화폐나 자기, 와편, 철기 등을 다량 발견하였다. 특히 소형(小兄)이라는 관등명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기와에는 각종 무늬와 부호가 새겨져 있어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산성하(山城下)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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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도산성 아래에 있는 고분의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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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산성을 보고 난 다음에는 산성 아래 통구 북쪽 평지에 펼쳐져 있는 무덤 떼로 향했다. 통구 옆에 동서로 길게 형성된 충적분지처럼 보이는 넓은 공간에 수십 기의 돌무지 무덤이 널려 있다. 이곳에서 1562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그 중 눈에 띄는 돌무지 무덤만 해도 40여 기는 된다.

큰길에서 고분군으로 나 있는 작은 길 초입에 ‘산성하 귀족묘지 시의도(示意圖)’라는 표석이 있어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면서 왼쪽으로 돌무지무덤 3∼4기가 보인다. 2단의 돌계단이 있고 그 위로 돌무지가 쌓여진 형태로 초기형태의 무덤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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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문이 보이는 계단식 돌무지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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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자 표석이 있는 무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표석이 있는 것들은 조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좀더 중요한 무덤이다. 그리고 현실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는 돌무지 무덤도 보인다. 네모 형태의 밑 부분에 2단의 돌계단이 있고, 그 위로 사각뿔 형태의 돌무지 봉분이 있으며 남서쪽으로 현실 출입문이 나 있다. 그 무덤 뒤로 돌무지 봉분이 절반 정도 무너진 또 다른 무덤 3기가 보인다.

이제는 길이 약간 오른쪽으로 굽어 통구 방향으로 나 있고 무덤의 형태도 좀더 웅장한 모습으로 바뀐다. 4단의 돌계단이 있고 그 위로 돌무지가 쌓여있는 무덤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고구려 무덤은 전체적으로 계단의 수가 많아지고 계단의 돌이 커지면 시대가 후기로 넘어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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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갑묘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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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의 돌계단은 후대에 보수한 것처럼 아주 정교하고 가지런하다. 이 무덤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귀갑묘(龜甲墓)가, 왼쪽 앞으로 세 기의 묘가 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절천정묘(折天井墓)이다. 이들 무덤은 벽화가 있는 고분으로 유명하다. 귀갑묘의 현실 안에는 거북 등 껍질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현실은 네모난 형태의 방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 벽에 채색된 그림이 있고 귀갑형의 도안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봉분의 길이는 18m이고 높이는 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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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가 그려져 있는 절천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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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천정묘는 현실 천정의 덮개돌이 곡선형태로 굽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실내에 하얀 회로 칠을 한 다음 벽화를 그렸으며 조성연대는 약 5세기초로 추정한다. 봉분의 길이는 20.3m이고 높이는 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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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총: 형총과 제총이 나란히 있다. 높이 차이로 인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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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무덤 옆에서 만나는 멋진 무덤이 바로 형제총(兄弟冢)이다. 형총과 제총 2기로 되어있는데, 이 무덤이 계단식 돌무지 무덤에서 계단식 무덤으로 가는 과도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다음 단계가 우산 고분군의 하이라이트인 계단식 무덤 장군총(장수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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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총: 4층 12단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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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무덤들은 계단이 낮고 돌무지가 더 높은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이들 형제 무덤은 계단이 더 높다. 그리고 그 계단도 3층 또는 4층이며 각 층은 또 다시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층과 계단을 모두 합치면 9단 내지 12단이 된다. 무덤의 계단이 높아짐에 따라 묘의 현실이 높은 곳(上部)에 위치하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형태의 무덤을 방형적석묘(方形積石墓)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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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총: 3층9단에 높이가 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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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형제총은 5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두 무덤의 길이는 20m로 거의 같다. 그러나 높이는 4층으로 되어있는 형총이 6m로, 3층으로 되어있는 제총보다 1m 높다. 이들 형제총 외에도 동쪽으로 여러 기의 무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들 무덤은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것 같아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발길을 통구의 강변으로 돌린다. 넓지 않은 강폭으로 유유하게 흘러가는 물이 고구려의 역사와 나를 연결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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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구는 通溝 또는 洞溝로 쓴다. 그리고 통구를 경우에 따라서는 통구하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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