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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군대의 말(馬)

  • AD 최고관리자
  • 조회 1342
  • 몽골
  • 2014.02.2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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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담축제 기간 중 울란바타르 근교 초원에서 칭기스칸 푸른군대 기마대 행사 재현 장면

1220년, 1년 안에는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는 콰레즘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단 3일 만에 초토화 시킨
칭기스칸은 몽골 제국의 가장 유능한 장군인 제베와 수베에테이에게 3만 병력을 주어 서쪽을 정벌토록
했다. 도주한 콰레즘의 술탄 무하마드 알라 앗단을 추격하는 것이 외형의 이유였지만, 속뜻은 따로 있었다.
유럽세계를 정찰하고 정복하는 것이었다. 두 장군은 페르시아에서 몇 차례 작은 접전을 치른 뒤 러시아
남부 지역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몽골군은 러시아측 선봉 부대인 조지언군(Georgian, 현 그루지아)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전투가 시작되자 마자 몽골군은 곧바로 퇴각을 했다. 달아나는 몽골군을 향해 조지언군이 물밀듯이 진격
을 해 왔다. 그러나 조지언군의 말들이 맥을 못출만큼 지쳐버리자 몽골군은 미치 자신들의 말을 숨겨둔
곳으로 달려가 그 말들을 갈아타고 조지언 기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궁수들의 화살세례까지 받은 조지언군
은 곧장 무너져 내렸다.

조지언군을 물리친 몽골군은 코가서스 산을 넘었다. 그들은 러시아 남부의 사막 초원지대에 있는 흑해 북쪽
(말들에게 풍부한 목초지를 제공한)에서 일단 진격을 멈췄다. 휴식을 취한 뒤 그들은 동쪽으로 아스트라칸을

공격하는가 하면, 드네프르 강변을 따라 돌격했다. 그러자 1223년 5월, 러시아는 8만명의 군대를 앞세워
반격을 가했다. 제베와 수베에테이 장군은 2만의 부대를 소집했다. 적군의 4분의 1 규모였다. 몽골 부대는
다시 <위장 후되 전략>을 썼다. 일주일 동안이나 달아나기만 하던 몽골군은 칼카강에서 전투대열로 정비
했다.

한편, 동쪽의 침략자들이 퇴각을 거듭하자, 러시아군은 몽골군이 혼란에 빠졌다고 판단했다. 지원군의 도착
도 기다리지 않은 채 공격했다.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몽골의 궁수들은 잘 훈련된 말을 타고 정확도를
자랑하는 활을 쏘면서 러시아군 진영을 종횡무진 유린했다. 러시아 군대는 완전히 무너졌고 대부분의 병사
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칼카(Kaika)강 전투이다 현재는 칼미우스 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몽골군의 이 전법은 말을 이용한 학익진이었다.(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사용해 승리를 거둬 유명해진
바로 그 전법이었다) 학의 날개에 해당하는 부분은 천천히 후퇴하는 반면, 학의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중앙
의 군대는 빠른 속도로 퇴각을 한다. 적들은 중앙군을 목표로 삼아 공격을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항아리 속에 포위된 형국에 놓이게 된다. 이 전법은 훗날 헝가리군을 상대할 때 바투칸과 수베에테이에 의해

다시 한번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칼카강 전투는 칭기스칸군의 전쟁에 있어서 말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마디로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은 유럽 말에 비해 덩치는 작지만 강력하고 튼튼한 말이 있었기에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정복하고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몽골인들은 말(馬)에 숭고한 뜻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군대가 원정을 나가기 전에 통솔자는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암말의 젖을 땅에 뿌렸다.
샤머니즘 의식에서 말은 <천국으로의 운송수단>이란 뜻으로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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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 아이들은 걸음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말 잔등에 올라타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몽골에선 전쟁에서 승리하면 공은 세운 말부터 포상했다. 전쟁터에서 말들은 빠르고 유연했다.
이러한 강점을 가장 잘 활용한 몽골군은 적을 기습한 뒤 잽싸게 초원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이런 몽골군을 정착 농경사회의 군대는 추격할 수 없었다. 농경사회의 말들은 오래 타고 달리는
것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농부군인들은 그들이 일하는 일터에서 장기간 벗어날 수
없었고, 따라서 몽골군인들을 멀리 쫓을 수도 없었다. 전쟁터 바로 뒤에 방목을 함으로써 일과
군량미를 동시에 해결하는 유목군데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칭기스칸 군대의 기병은 한명 당 보통 3~4마리의 말을 갖고 있었는데 병사가 말 한마리를 타고
질주하는 동안 나머지 말들은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다. <동방견문록>을 쓴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에 따르면 몽골군은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을 때,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말을 사용했다
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말의 피를 마시고 영양분을 섭취한 기수는 10일 가까이 불도 한번 지피지
않고 행군을 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말의 젖도 기나긴 전투 기간 중 병사가 목숨을 연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기병들이 주로 암말을 타기를 선호한 것은 그 때문이다. 젖을 발효시켜서 먹기도 했는데, 몽골인
들이 즐겨마신 쿠미즈(Kumiss)나 아이락(Airag)은 알콜이 잔뜩 들어간 것들이 이었다.

요즘도 몽골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황량한 초원에 홀로 버려진다 해도 말이 살아 있으면 살아
남을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말은 유목민의 가족이자 동지이다. 그러나 13세기 유목민들에게
말의 중요성은 오늘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말의 성능에 따라 전쟁을 이기도도 지기도
한다. 목숨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칭기스칸 군대가 세계를 정복했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칭기스칸의 말은 유럽인들이 보기에 탄도미사일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끓임없능 훈련과 한없는 사랑을 결합해 말을 말이 아닌 미사일로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다.
마치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디지털 문명으로 무장한 사람들과 마주친 충격에
휩싸인 것처럼, 유럽의 정착문명은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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