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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몽골의 종교와 샤마니즘

  • AD 최고관리자
  • 조회 1325
  • 몽골
  • 2014.02.24 15:33

1. 몽골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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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그의 저서 <종교 형태론>에서 <가장 대중적인 기도
는 하늘에 계신 신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인들이 말하는 <뭉크 뎅그린>도 이와 같은 의미
이다. 뭉크 텡그린이란 말은 뜻대로 보자면 단지 <영원하며 푸른하늘>일 뿐이다. 몽골인들은
하늘 그 자체가 초월적인 힘, 즉 신성을 가지는 것으로 여긴다.
또한 몽골인들은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나무, 바위, 산 등에 정령이 있어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에는 땅을 지키는 신이, 난로에는
불을 지키는 신이, 가옥에는 터줏대감이 있으며,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이 있다고 믿는다.

목숨을 위협하는 거친 자연환경과 종족간의 갈등이 심했을 때는 초원의 주인이 아침저녁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기댈 수 있었던 곳은 신뿐이었다. 그래서 몽골인은 많은
전통을 없앴던 사회주의 시기에도 그들의 종교만은 유지해 왔던 것이다.

-몽골의 대표 신앙 라마불교

몽골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라마불교을 믿는다. 불교는 몽골인에게 종교라기보다 생활의
일부로, 이들은 집안에 불상을 모셔놓고 지낼 정도로 적극적인 신도들이다.
몽골인은 부처를 <샤릴 샤싱 / 노란 신> 이라고 부르며 모든 것은 부처를 통해야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일은 부처의 대리인인 승려가 관장했다. 왕에서부터
말단까지 지배계층은 모두 승려였다.
몽골인이 최초로 라마교를 받아들이 것은 원라라 태종 오고타이 때였다. 세조 쿠빌라이가
중국 전역을 점령하고 티베트를 손에 넣었을 당시 라마교의 최고 지도자였던 파스파를
초청하였다. 그는 몽골불교의 수장으로 추대되었고 티베트어를 차용해 최초의 몽골 문자인
파스파 문자를 제정하였다. 이루 청나라는 몽골족의 야성을 완화하기 위해 라마교를 정책적
으로 권장했고. 맏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들은 라마승을 만들도록 법으로 정했다.
이로 인해 인구가 격감하자 몽골 공산당은 1921년 혁명 후 라마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당이 종교를 장악했지만 일반인의 신앙생활 만은 허용했다.

티벳트 불교는 짧은 시간에 학문과 예술, 의학, 과학, 철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미쳐
몽골인들의 새로운 정신문화를 축적하게 된다.
초원 곳곳에 티벳 불교가 들어서고, 많은 젊은이들이 머리를 깍고 라마승이 됐다. 티벳불교의
개종은 야성적이었던 몽골인의 기질까지 바꾸어 놓았다. 몽골인들은 말에서 내려 칼이나 활
대신 불경을 손에 들었다. 몽골 제국의 쇠락에 라마교가 끼친 영향이 커다고 할 수 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는 현재 세 개의 라마사원이 있다. 간단사원에는 100여 명의 승려가
활동하고 있으며 부설 불교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초이진
라마사원과 복트 게겐사원은 관광객으로부터 달러를 벌어 들이고 있다.

-달라이 라마
몽골인은 경제적으로 우라나라의 발전을 인정하지만 민족족 자부심에서는 자신들이 늘
앞선다고 말한다. 중국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제 14대 달라이 라이인 텐진갸초의 방문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2002년 11월 몽골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방무놔 설교을 허용해 중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다. 당시 몽골정부는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허용한 것이지 정치 지도자로서의 입국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며 중국과 당당히 맞섰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에서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3대였던
쇠남 갸초가 몽골 지도자였던 칸을 방문 했을 때 받은 칭호가 굳어진 것이다.

-무당
몽골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무당이다. 샤머니즘의 보고로 알려진 홉스골 호수
지방에는 진짜 무당이 남아 있어 세계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몰려든다.
몽골인은 무당을 말할 때 곧잘 칭기스칸의 신통력을 예로 든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운명과
역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하늘이 자신을 부른다며
백마위에서 운명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칭기스칸이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 한 일을
해낸 것은 그가 무당의 초자아적 능력과 비슷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무당들은 외부에서 신을 불러들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몽골 무당은 자신의 영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몽골인은 혼수 상태와 흡사한 탈 자아
상태에서 무당의 영혼이 몸으로부터 빠져 나와 하늘과 땅, 물속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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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몽골 초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이 <어버> 즉 성황당이다. 성황당은 미신을 억압했던
공산주의 시절에도 폐기되지 않고 전해질 만큼 몽골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몽골인은 학식, 지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수시로 성황당을 찾아가고, 어디에서나
성황당을 만나면 예의를 갖춘다. 성황당은 마을의 수호신이요, 초원의 이정표이자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몽골인들은 먼 길을 떠나기 전 성황당에 들르는 풍습이 있어, 이른 새벽 성황당에는 참배자
가 꼭 한 두 명씩은 있다. 어둠이 가시기 전 성황당에 들러 세바퀴 돌고 흰 우유를 뿌리며
여행길이 무사하기를 빈다.
성황당을 섬기는 <어버제>는 학계가 주목하는 민간신앙의 하나이다. 나담 때는 성황당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어버제를 지낸다. 우리의 동제(洞祭)와 같다.
이때는 마을 사람 모두가 나와 어른부터 차례로 성황당에 삼고구배(三叩九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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