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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결혼, 성

  • AD 최고관리자
  • 조회 6902
  • 몽골
  • 2014.02.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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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빌려준다?

몽골인의 성 풍속은 알려진 것보다 완고하고 합리적이다. 그들은 사랑도 가문의 유지와
종족의 번영을 위한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에스키모 인과 몽골인은 근친혼의
폐해를 경험으로 익혀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근친혼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장애아로
태어나거나 열성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혈통이 근접
한 사람과의 혼인을 피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다른 부족을 선택하려 했다.
몽골의 이웃 마을은 평균 100~150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아버지가 이웃 마을의
규수를 맞이하면 아들은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 300~500키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부족의
여자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곤란을 겪다보니 가문의 번성을 위해
낯선 이의 씨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아내를 외간 남자와 동침케 하는 데도 법도가 있었다. 손님을 맞은 씨족장은 회의를
개최하여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물었다. 또 남자의 지적 수준 및 외모와 됨됨이를
보고 동침여부를 결정했다. 공산혁명 이전에는 승려들이 새 신부의 초야권(初夜權)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즉, 신부가 첫날밤을 승려와 보내는 것이다. 당시 지식힌 계층은
승려 뿐이라 그들이 사회전반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우수한 혈통을
이어받기 위해 이런 풍습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아이는 아버지가 누구인
가를 묻지 않고 자식으로 키웠다.
일부 지방에서는 남편이 집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출타한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떠났다.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허락하는 묵시적인 방법이다. 가문에 좋은 씨가 들어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아내가 출산이 아닌, 쾌락을 
목적으로 간음한 자는 예부터 법으로 엄격히 다스려 왔다.

아버지의 여자도 상속 받는다.
몽골인은 친족에 의한 혈족은 인정하면서도 인척관계로 생간 혈족은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동시에 두 명의 자매와도 혼인이 가능하였다. 또한 여자는 자기가 현세에서
섬긴 사람을 사후헤도 섬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생모가 아닌 과부는 재혼하지 않고
막내아들의 아내가 되었다. 몽골인은 막내상속을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후처 중에는 나이가 아주 어린 경우도 있어 막내에게 가는 것이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는 길이라고 믿었다.

결혼풍습
옛날에는 몽골인은 누구나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많은 아내를 거느릴 수 있었다.
생모, 딸, 생모의 자매를 제외하고는 친족 중 어떤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었으며, 형제의
사후에는 그 처와 결혼할 의무가 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전통혼례를 올린다. 우선 청혼의 의미로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긴 하닥
을 보낸다. 신랑집으로 결혼에 필요한 경비인 가축을 보내면 약혼이 성립된다.
신랑집에서는 결혼 하루 전날 새로 만든 게르를 조립해 놓고, 신랑은 처가에 인사하러
간다. 장인과 장모는 신랑에게 활과 새옷, 차(茶)를 준다. 집으로 돌아온 신랑은 다음날
활을 어깨에 메고 장인, 장모에게 드릴 소와 말, 양을 각각 한 마리씩 몰고 간다.
이 때는 꼭 5~6명의 들러리와 동행한다.
신부는 장식품으로 치장을 하고 신랑을 맞이한다. 신부가 게르 밖에서 신랑과 서로 머리를
맞댄다. 신랑은 신부를 말에 태우고 신부집 주위를 세 바퀴 돈 뒤 새 집으로 간다. 신랑집
에서는 연회를 베푼다. 신랑신부는 차를 끓여 시부모와 하객들에게 대접한다. 시어머니는
가정에 충실하고 착한 아내가 되라는 뜻으로 신부의 새 옷에 돌과 도끼를 놓아준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신부는 베일을 쓴 채 3일간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나흘째 되는 날 신부의 친정 아버지가 와 베일을 벗기고 시부모에게 절을 시킨다. 이때서야
비로소 새색시가 되는 것이다. 

몽골족의 결혼은 조혼이다. 칭기스칸도 아홉 살 때 한 살 연상인 옹기라드 족 부르테와
결혼했다. 현재에도 법적으로는 18세로 제한하고 있으나  15~16세에도 결혼을 한다.
여자 나이 스무 살이면 벌써 아이를 두 세 명씩 낳는다.

초원의 약탈 결혼식

몽골인은 상대방의 과거야 어떠하든 지금 자기와 혼인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다. 결혼의 과정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약탈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칭기스칸의 어머니 후엘룬 우진도 그의 아버지 이수게이 바타르가 약탈해온 여자였다.
후엘룬은 남편인 메르키드족의 예케 칠레두와 길을 나섰다가 이수게이의 형제들에게
납치되어, 적장이자 칭기스칸의 아버지인 이수게이의 부인이 된 것이다.
후엘룬은 잡혀와 꼭 10달 만에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수게이는 아이를
친자식으로 받아들여 이름을 테무친이라 불렀다. 자신이 타타르족의 테무친 우게의 목을 벤 날
태어났다고 해서 적장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준 것이다.
테무진의 아내도 메르키트 족에게 납치를 당했다. 테무진이 메르키트 족을 급습하여 아내를 찾아
왔을 때, 아내는 만삭이 되어 있었다. 테무진은 아이의 이름을 몽골어로 손님이라는 뜻의 <주치>
라 지었고, 가문의 장손으로 인정했다.
몽골인은 대체로 출생 사정에 관계없이 모두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을 베풀어 왔다.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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