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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국가와 군대

  • AD 최고관리자
  • 조회 1431
  • 몽골
  • 2014.02.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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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은 말과 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닮았으며, 같은 초원에서 태어나  같은 기후, 토양에서
자라났으며, 똑 같은 훈련으로 길들여졌다.

 

텡그리

몽골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 대칸의 신은 여전히 <텡그리> 즉 하늘의 신이었다. 이는 어떤 점에서는 중국의 天 사상과 흡사했다. 칭기스칸의 대를 이은 후계자들은 모두 지상에서의 텡그리의 대리자 임을 자처하였다. 그들의 명령은 텡그리의 명령이었고 그들에 대한 반역은 곧 텡그리에 대한 반역이었다.
칭기스칸은 국가의 대사나 큰 일이 있을 때에는 헨테이 산맥, 오논 강 발원지역에 있는 부르칸 칼둔 산에 올라 말젖을 발효시킨 술로 텡그리에게 의식을 올렸다. 청년시절 칭기스칸이 메르키트 족에게 아내를 약탈 당했을 때도, 북경의 금나라에 대한 거국적인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도 부르칸 칼둔 산에 올라 기도하였다.


-오, 영원한 텡그리시여! 나는 금에게 모욕적인 죽음을 당한 조상들의 피를 복수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습니다. 만일 그대가 내가 하는 일을 승인하신다면 그대의 힘을 나에게 내려주소서!-


칭기스칸은 사흘동안 기도를 올리다가, 나흘째 되는 날 천막에서 나와 영원한 텡그리가 우리들의 승리를 약속했다고 선언하였다고 했다.
이러한 원칙에 토태를 둔 몽골은 문자는 위구르 문자를 차용했으며, 칭기스칸은 금나라의 관리자였던 타타통아로 하여금 아들들에게 위구르 문자를 가르키게 하였다. 1206년 칭기스칸은 아내 부르테가 아이 때 입양하여 기른 타타르인 시기쿠투투에게 대법관의 직위를 부여하여 사법적 결정과 호구내역을 관리하는 책임을 맏겼다.

야삭(Yasaq)


야삭은 칭기스칸 국가의 <법전>이다. 시작은 1206년에 개최된 쿠릴타이에서 시작되었다. 야삭은 민법이자 행정법이었다. 야삭을 통하여 <하늘의 힘>인 대칸은 하늘이 정한 엄격한 기율을 민간사회와 군대에 적용되었다. 이 법은 너무나 가혹하여 살인, 절도, 음모, 간통, 비적 등은 사형으로 다스렸다. 1206년 쿠릴타이 이후, 약 40년 뒤 프란체스코회의 플라노 카르피니는 몽골을 여행하고 돌아와 남긴 기록에 의하면,
몽골인들은 세상에서 지도자에게 가장 순종적인 사람들로서 그들의 지도자에게 크나큰 경의심을 품고 있으며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말다툼, 시비, 살인이 없다. 좀도독 정도만 간간이 일어날 뿐이다.  

지배구조


지배층의 정점에는 칭기스칸의 일족이 있었다. 이 황금씨족의 수령은 대칸이었고, 아들인 왕자들은 <쿠베쿤>으로 불렸다.  이 일족들은 정복한 광대한 영역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자유스런 신분인 전사나 충복들 평민, 몽골계가 아닌 노예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계층을 지휘하고 관리하였다.  이같은 통치원리가 군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십호, 백호, 천호, 만호로 나누었다. 백호, 천호, 만호의 지휘관들은 고위 귀족인 <노얀>을 임명했다. 그 아래로 자유민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군대의 중추였다. 이들은 <타르칸>이라는 칭호로 불리며,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과 사냥에서 잡은 짐승을 차지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으며, 타르칸들 중에서 공을 세운 자들은 <노얀>으로 승진하기도 하였다.

케식


군대에는 대칸의 친위대(케식)라는 특수한 엘리트들이 있었다. 이 친위대는 1만명 정도로 출발했으며, 주간 친위, 야간 친위, 궁사들로 구성되었다. 귀족들과 <타르칸>이라는 특권을 가진 자유민들만 친위대원이 될 수 있었다. 친위대 일개 병사는 다른 부대의 천호장 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었으며, 칭기스칸은 많은 장군들을 이 친위대에서 선발하였다. 칭기스칸의 사망할 무렵에는 친위대의 실제 별력은 12만 9,000명에 달하였다.

몽골군의 전술


몽골군대의 전술은 초원에서 대규모 몰이사냥에서 발전된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영원불멸의 전술이었다.
칭기스칸은
-낮에는 늙은 늑대의 경계심으로, 밤에는 갈가마귀의 눈으로, 전투에서는 적을 매처럼 덮쳐라-
칭기스칸은 정찰조에게는 사슴 무리에 참을성 있게 몰래 접근하는 방법을, 초원에서 사냥할 때 몰이대형을 사용하여 달아나는 야생동물의 무리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우회기동법을 가르켜 주었다.
몽골 사람들은 어린시절부터 말을 타고 할을 쏘던 기마궁수로 자라났다. 빗나가는 법이 없는 그들의 화살은 적의 대오에 엄청난 혼란들 가져다 주었다. 몽골군은 따라잡기 어려운 기동력에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전술상의 우의를 가지고 있었다. 몽골군은 대형별로 자주 교체하면서 일제 사격을 퍼붓고는 빠져나갔다. 적이 원거리 사격으로 어느정도 기동력을 잃게 되면 중무장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칼을 빼들고 악마적인 고함을 내지러며 돌진하여 적을 동강내었다.

몽골인과 그들이 탄 말은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중국, 페르시아, 러시아, 헝가리인들을 사냥했든 것이다. 사냥감을 기진맥진케 한 뒤, 포위하여 조직적인 살육으로 끝을 내는 거대한 몰이사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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